이란, 이스라엘 직접 공격 결정
중동 정세가 급하게 돌변하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 이란이 보복전쟁을 선포했다. 더욱이, 이란은 미국의 참전도 지원도 하지말것을 공식화했다.
5차 중동전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전쟁에 5차 중동전쟁까지 터진다면 정말 3차 세계대전을 살아생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폭격을 맞은 이란 영사관( 시리아 다마스쿠스 )>
오늘, 뉴욕타임스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이란 영사관 폭격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이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전군에 최고 수위 경계령을 내렸고 억제력 창출을 위해 직접 이스라엘에 대응공격을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이 폭격을 받아 이란군 장성 등 13명이 숨졌고 이란은 이스라엘을 폭격 배후로 지목하고 응징을 예고했다.
<중동전쟁>
제1차 중동전쟁 (이스라엘 건국전쟁, 1948-49)
제2차 중동전쟁 (수에즈 전쟁 / 위기, 1956)
제3차 중동전쟁 (6일 전쟁, 1967)
제4차 중동전쟁 (10월 전쟁, 1973)
#. 1차 중동전쟁(1948.5.15일 ~ 1949.3. 10)
최초의 중동전쟁. 아랍권에서는 1948년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하여 1948전쟁(1948حرب)이라고 부른다. 아랍권 외의 국가들은 이스라엘 건국전쟁(מלחמת העצמאות)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뒤 영국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무주공산이 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지역을 둘러싸고 아랍인과 유대인 간의 충돌이 지속되었다.
UN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분할안도 아랍인과 유대인 양측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지게 되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텔아비브 미술관의 홀에서 건국선언문을 낭독함과 함께 제1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었다.
#. 2차 중동전쟁(1956. 10. 29 - 1956. 11. 3)
제2차 중동 전쟁, 또는 수에즈 위기는 1956년 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한 전쟁이다.
아랍권에서는 삼국 동맹 공격(아랍어: العدوان الثلاثي, 영어: Tripartite Aggression) 또는 카데시 작전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에서는 시나이 전쟁(히브리어: מלחמת סיני, 영어: Sinai War)이라 불린다.
1952년 7월 이집트에서 급진파인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 파루크 왕정이 타도되고 나세르가 정권을 장악했다.
4년 후인 1956년 7월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 회사와 운하통행료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외교적 교섭과 군사행동 중 '폴리스 액션(police action)'으로서 후자를 택하였으나 미국은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양국에 권고하였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침공했고 11월 5일 영·프 연합 공수부대가 수에즈 운하의 관문인 포트 사이드에 투하되었다.
전세는 처음부터 완전한 시나리오하에 기습한 영국·프랑스·이스라엘에 의해 주도되어 11월 6일 수에즈 운하와 시나이반도는 공격측에 점령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유엔의 철군 요구와 세계 여론의 압력이 급증, 3국은 정치적 곤경에 놓이게 되었고, 11월 14일 유엔 총회에서 유엔 긴급군(UNEF)의 파견을 내용으로 하는 정전안이 채택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 철수하였다.
#. 3차 중동전쟁(1967. 6. 5 – 1967. 6. 10)
제3차 중동 전쟁 , 6일 전쟁(히브리어: מלחמת ששת הימים 또는 아랍어: حرب ۱۹٦۷) , 6월 전쟁 또는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주변 이웃 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연합하여 벌인 전쟁이다. 이 때 당시 이집트는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불렸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당시 이스라엘은 주요 목표 중 하나였던 티란 해협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지역은 1950년 이래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항해를 봉쇄하고 있었다.
1967년 5월 말 가말 압델 나세르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해 해협들이 봉쇄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따라 군을 전진시켰고,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에 대항해 이집트 공군기지에 이스라엘 입장의 예방적 선재공습을 가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제3차 중동전쟁을 발발하게 만들었다.
#. 4차 중동전쟁(1973. 10. 6 ~10. 25)
1973년 10월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기습침공하여 발생한 전쟁이다.
전쟁이 일어난 당일이 욤 키푸르라는 유대교 전통의 속죄일이었기 때문에 흔히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도 한다. 또는 '10월 전쟁'이나 '라마단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에서 단 6일만에 대승을 거둔 이스라엘은 각각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잃어버린 이집트와 시리아에게 이스라엘의 인정과 항구적인 평화 협정 체결, 이 지역의 비무장지대화를 조건으로 두 지역을 반환하는 것을 비밀리에 제안했으나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등 아랍 8개 국가들은 같은 해 9월 수단의 하르툼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무평화, 무인정, 무협상의 3무 원칙을 공식화하며 거부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자국 영토로 합병하는 절차에 착수했고 이에 반발한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의 반환과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벌인것이다.
이에 양국이 대치하는 수에즈 운하 일대에서 이스라엘군과 이집트군 사이에 수년 동안 국지전이 계속되었는데 이를 소모전(حرب الاستنزاف/מלחמת ההתשה)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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