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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한명숙 근황, 노란샤스의 사나이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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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한명숙 근황, 노란샤스의 사나이 한명숙

특종세상 현미, 가수 한명숙 근황 공개 강화도 여행

가수 한명숙

가수 현미가 나이 3세 차이 '노란 샤쓰의 사나이' 한명숙과 강화도로 여행을 떠난다. 9월 23일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는 1960년대를 풍미한 가수 현미가 출연한다. 데뷔 64년 차 가수 현미는 이날 방송에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선 196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한명숙과 현미가 함께 여행을 떠난 사연이 공개돼었다.

가수 한명숙 근황

특히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원로 가수 한명숙과의 강화도 여행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3년 전 현미는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한명숙이 병상 신세를 지고 있는 모습을 공개한 바 있어 가수 한명숙의 근황에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노란샤스의 사나이로 유명한 가수 한명숙(나이 87살)은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손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한명숙은 몇 년 전 허리 통증으로 몸져누운 상황이었다. 한명숙은 현재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바깥 출입도 쉽지 않다. 남편과 2004년 사별한 이후엔 공황장애를 앓은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애썼다. 아들마저 먼저 보내고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노란 샤쓰의 한명숙, 외롭고 적막한 '고려장' 느낌에 통장잔고가...

 

지난 2012년 70년대 유명 여배우였던 허진의 생활고가 세간의 화제되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한명숙이 월세 4만원의 임대주택에 기거하며 현재 통장잔고가 286원이라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가수 한명숙

2012년 방영된 좋은 아침에는 1960년대 미8군에서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사랑받았던 한명숙과 197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솔(soul) 가수이자 '봄비'로 인기몰이를 한 박인수의 우여곡절 많은 인생 이야기가 그려졌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통장 잔고가 286원인채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한명숙은 "어떤게 가장 힘들냐"는 질문에 "남한테 이야기하지 못하고 나혼자 괴롭다. 누구한테 이야기 한다해도 도와주는 사람 없다. 외롭다. 냉정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제작진이 딸에게 이야기했냐고 묻자 그는 "우리딸한테 이야기하면 울꺼다. 마음이 아파서 울꺼다"며 딸 이야기에 눈물을 글썽였다.

또한 한명숙은 "딸에게 농담으로 임대아파트 좋긴한데 주위가 너무 조용하니까 고려장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한 적 있다"고 외롭고 적막한 심정을 전했다. 이날 한명숙은 어느 작은 시장의 행사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걷기도 불편한 몸이지만, 노래를 부르는 내내 행복한 모습이었다.

 

한명숙은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이제 딱 한 달됐다. 내가 수급자로 돼 있다. 그래서 6년 동안 임대주택을 신청했는데 6년 만에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큰 아들이 공황장애가 있다. 아들이 날 돕기 보다는 내가 아들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다. 나머지 두 아이는 미국에서 산다. 그러다 보니 정부 수급자로 도움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6년 자식들로 독립해 수원으로 터를 옮긴 그녀. 딱히 수입이 없는 그녀의 통장잔고는 286원. 화려했던 시절과는 다른 삶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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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하였고 평안남도 용강에서 성장하였으며 한국 전쟁 당시 월남하여 이후 경기도 인천에 정착했다. 한명숙은 1953년 주한 미8군 무대에서 가수 첫 데뷔하였고 8년 후 1961년 허스키한 목소리로 손석우가 작곡한 노란샤쓰 사나이를 불러 대히트를 시켰다.

 

노란샤쓰 사나이는 동남아에도 진출하여, 대한민국의 외부에서 히트한 최초의 가요이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감사패, 2012년 제12회 대한민국 전통가요대상 원로가수상을 받았다.

부군 故 이인성은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상사 출신이자 한국 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였으며 그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다.

 

노란 샤쓰 사나이는 1962년 3월 엄심호 감독의 영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로 만들어지기도 하였고, 가수 한명숙은 이 영화의 단역으로 영화배우로도 데뷔하였다. 이 영화는 당시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 히트를 쳤었다.

최전방 위문공연은 물론 파월장병을 위한 위문공연에도 누구보다 앞장서온 전성기 시절, 가수 한명숙 그녀에게 붙여진 별명은 두 개였다. 하나는 ‘왕대포’, 그리고 또 하나는 ‘감초’. 항상 구수하고 걸쭉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동료 블루벨즈가 지어준 별명이 ‘왕대포’,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 늘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한다고 해서 ‘감초’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동료들과의 유대관계 또한 돈독하다. 오히려 너무 흠이 없어 매력이 없다고 치부될 정도로 연예계에서 드물게 ‘갖춘 사람’으로 통한다.

 

현모양처형인 한명숙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캔들이 없었던 가수이기도 하다. 시련도 많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 군예대 시절에 만난 군악대 소속 트럼펫 연주인 이인성씨와 56년 1월에 결혼했지만 41세의 일기로 타계하자 2남1녀의 자녀를 혼자 키워야 했고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동시에 모시고 살아야 했다. 거듭된 시련으로 성대가 손상되어 언어장애와 함께 목소리를 3년간 잃어버렸기 때문에 노래를 접어야했던 아픔도 있었다. 가수로써 치명적인 성대수술을 두 차례나 감당해야 했다.

 

슬하의 2남1녀 중 큰딸 은경씨는 미국에, 그리고 장남 이일권씨는 이명훈이 부른 ‘내 사랑 영아’ ‘엄마의 소망’ 등의 작곡자로 언더그라운드 그룹 ‘화랑’을 이끌기도 했다. 막내아들 일준은 일본 유학을 마친 뒤 현재 미국 샌디에고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78년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00년 10월, 국민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었다.

 

세월은 그 누구도 빗겨가질 않나보다. 화려한 가수로 한시절을 풍미했던 한명숙, 노년의 삶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말았다. 설령 지금 젊음과 영광이 함께 한다고 하더라도, 돈과 권력을 한가득 거머쥐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노년이 마냥 지금처럼 행복할 것이란 믿음은 부질없는 기대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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