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최동원 사인
故 최동원 (1958-2011) 부산일보 파업 사건
롯데 최동원 사인은 아직도 의문이다. 롯데 최동원 선수는 부산의 자랑이다. 그런, 롯데 최동원 선수 사망 후 4년 만에 밝혀진 의문의 소금물 캠프가 롯데 최동원 사인을 짐작케 하고 있다.
그런데, 80년대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던 롯데 자이언츠의 故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가 사기를 당했다는 호소가 전파를 타게 되어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5월 29일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故 최동원의 어머니에게 접근해 억대 사기 행각을 벌인 여성의 실체에 대해 보도했다. 해당 여성은 '제임스'라는 인물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롯데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여성은 롯데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고 한다.
롯데 최동원 선수는 대장암으로 2011년 9월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롯데 최동원 선수의 사인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동원 선수 사망 4년 후 한 목사 부부가 아픈 이들에게 소금물을 섞인 물로 치료하겠다며 불법 의료행위를 벌였던 '소금물 관장 캠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롯데 최동원 선수의 사인도 재조명 받았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하던 중 故 롯데 최동원 선수도 캠프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그 당시 경찰은 故 최동원 선수가 사망하기 9개월 전 해당 캠프를 참가했다고 전하며 사망과 관련성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었다.
해당 사건이 보도되자 피해자들의 제보가 잇따르며 목사 부부 처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소금물 관장캠프 사건이야 말로 병자의 선량한 처지를 악용한 더러운 범죄였다.
과거, 롯데 최동원 선수의 선행이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다. 파업 현장에 홀연히 나타나 사라졌던 야구 선수로도 유명한 일화를 가진 분이 바로 롯데 최동원 선수이다.
군사정권 아래서 보도 편집권을 보장받기 위한 1988년 부산일보 파업에 롯데 최동원 선수가 뜬금없이 나타나 당시 돈 100만원 주고 사라지는 일화가 밝혀져 많은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었다.
나중에 100만원 기부한 사람이 최동원이라는걸 알고 파업하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당시 100만원은 현재 1천만원이 훌쩍 넘을 거금이다.
부산일보 파업 사건
1987년 2월 11일 부산일보사 기자들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부산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부산 일보』의 왜곡 편파 보도에 항의 성명을 내고, 당시 윤임술 사장과 김기철 상무가 장악하고 있던 편집국 제작 회의를 편집국장의 책임 하에 두는 체제로 환원시켰다.
6월 5일에는 4·13 호헌 조치의 철폐와 편집권의 진정한 독립을 요구하는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발표하였고, 8월 12일 관제 언론의 앞잡이인 윤임술 사장과 김기철 상무의 퇴진 그리고 편집국 간부들의 양심선언을 요구하며 실력 행사 직전까지 돌입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기자들은 기자협의회 차원의 투쟁과 방식에 한계를 인식하고, 1987년 12월 18일 『부산 일보』 기자 47명으로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하였으며, 1988년 1월 22일에 드디어 부산일보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최동원 선수는 롯데가 아니라 부산의 자랑이었다.
최동원 그가 남긴 불멸의 기록 3개
1. 한국 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둔 유일한 투수
1984년은 여러 모로 최동원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일단 리그 MVP(27승)와 탈삼진왕을 차지했고,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특히 한국 시리즈 우승은 온전히 최동원을 위한, 최동원에 의한 것이었다. 최동원은 한국 시리즈 총 7경기 가운데 5경기에 출장해 40이닝 4승 1패, 방어율 1.80이란 어마어마한 활약으로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특히 한 해 혼자 한국 시리즈 4승을 거둔 건 투수 분업화가 자리잡은 현재에는 갱신 불가능한 기록으로 평가 받는다.
2. 역대 한 시즌 최다 탈삼진(223개)
왼쪽부터 선동열(당시 해태), 최동원(롯데), 김시진(삼성)
역시 1984년에 배출한 기록이다. 284.2이닝, 1132명의 타자를 상대로 총 223개의 삼진을 뺏어냈다. 특히 284.2이닝은 1983년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427.1이닝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으로, 최동원이 왜 ‘무쇠팔’로 불렸는지 말해주는 수치이다. 실제로 최동원은 롯데에 입단한 1983년부터 87년까지 매 시즌 200이닝을 넘기며 전형적인 ‘이닝 이터’ 면모를 뽐냈다.
3. 역대 한 경기 최다 투구수 2위(209개)
투수 분업화가 철저한 요즘엔 선발 투수가 공 100개만 던져도 제 몫을 다 했다고 평가 받지만, 1980년대엔 아니었다. 선발 투수가 웬만하면 경기 끝까지 책임지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다.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와 해태의 시즌 3차전 경기에서 각 팀 선발로 등판한 최동원과 선동렬은 연장 15회 완투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경기 시간은 무려 4시간 56분. 이날 선동열은 공 232개를, 최동원은 209개를 마운드에서 뿌렸다. 그렇다. 역대 한 경기 최다 투구수 1, 2위 기록은 모두 한 경기에서 나왔다. 국내 야구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 매치’였던 셈이다.
롯데 최동원 선수
최동원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산으로 이사가 구덕초등학교,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77학번)를 거쳤다.
1981년 실업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서 실업 롯데 자이언츠를 1981년 실업리그 전기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신인왕, 다승왕, MVP를 수상하였다.
1981년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열린 인터콘티넨털컵 대회에서 최우수투수상을 받고 메이저 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팀과 메이저 리그 25인 로스터에서 시작하는 조항이 포함된 5년(1981년-1985년) 메이저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1981년 9월 15일 계약체결, 1981년 9월 28일 메이저 리그 사무국 계약승인)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메이저 리그 진출 대신 새로 출범한 한국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 1983년 입단하였다.
KBO 리그에 데뷔 후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 연속으로 규정이닝의 2배 이상 투구, 14회 이상 완투, 전 구단 상대 완투, 2점대 이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고,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데뷔 후 6년 연속으로 선발등판 2/3이상 완투, 선발승 전 경기 완투승을 하였으며,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40이닝 4선발등판 4완투, 1984년부터 1987년까지 4년 동안 1000.2이닝, 80승, 60완투, 2.16의 평균자책점,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 동안 1209.1이닝, 76완투, 2.2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경이로운 연투능력과 이닝이터능력을 나타내었다.
특히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데뷔 후 6년간 75.2%의 완투율을 기록했다. 1984년에는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56경기 324.2이닝, 31승, 6세이브, 18완투, 258탈삼진(한국시리즈 5경기 40이닝, 4승, 4완투, 35탈삼진)으로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4승을 올리며 1984년 롯데 자이언츠가 창단 첫 우승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등 KBO 리그 초창기를 이끌었다.
KBO 리그 데뷔 후 5년 동안(포스트시즌 포함) 연평균 41경기, 250이닝, 16회 이상 완투(완투율 76.2%)를 하면서 평균자책점 2.27을 기록하였다. 또한 역대 단일 한국시리즈 8개부분에서 1위를 기록했다(최다 이닝, 최다 승리, 최다 선발등판, 최다 선발승리, 최다 완투, 최다 완투승, 최다 완봉승, 최다 탈삼진). KBO 리그에서 8년을 활약하고 통산 평균자책점 2위, 통산 완투 2위, 통산 완투율 1위, 한 시즌 최다 승 2위, 한 시즌 최다 이닝 2위, 한 시즌 최다 이닝 4위, 한 시즌 최다 탈삼진 1위를 기록했다.
최고구속 155 km/h의 강속구와 강한 어깨로 아마야구 시절부터 '철완', '무쇠팔' 으로 불렸다.
한화 이글스의 투수 코치 및 2군 감독, KBO 경기감독위원 등을 역임했으나, 2011년 9월 14일 호전되었던 대장암이 악화되면서 54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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